'책장정리'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22.05.20 | [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2. 2022.05.19 | [애프터다크] 무라카미 하루키
  3. 2022.05.04 |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책장정리 | 2022. 5. 20. 11:23
Posted by seesun


 
독특한 방식이라고 해야할까. 동생과 형의 대화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한 소설.
 
교도소에서 출소한 마카베 슈이치는, 쌍둥이 동생인 마카베 게이지와 대화하며, 자신이 잡히게 되었던 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한다.
 
동생의 대화는 ( ), 형의 대화는 < >로 구분되어 둘의 대화가 헷갈리지 않게 도와준다. 역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달리 둘만의 대화를 다르게 표현한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동생 게이지는 이미 15년 전에 죽었다. 게이지의 영혼은 마카베와 함께 있었고, 그는 동생의 영혼과 대화를 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발상이다. 기억력이 좋은 동생은 형을 여러모로 돕기도 한다.
주인공 마카베의 신분은 도둑이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문 형사나 탐정보다 날카롭다. 마카베가 셜록이라면 그의 동생 게이지는 왓슨같은 느낌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여러 단편의 형식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마카베가 하나하나 풀어가는 사건들의 연속이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얽혀 있어서 내용도 다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언제까지 동생과 함께일 수는 없겠지만 그가 형을 떠나가는 순간, 떠날 수 밖에 없는 순간은, 마카베가 말하지도 깨닫지도 못한 마음 속에 영원처럼 오래도록 남았다.
 
피카레스크소설 - 악당이나 건달, 범죄자가 주인공인 소설., 스페인어로 "악당"을 뜻하는 단어인 "피카로"(Pícaro)에서 유래했다.
 
 

[애프터다크] 무라카미 하루키

책장정리 | 2022. 5. 19. 10:20
Posted by seesun



다카하시가 마리를 만나 새벽이 오기까지의 이야기.
오래전 나의 20대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무수히 많은 밤을 새웠던 20대의 시절로.

소설 속에서 잠시 만난 고오로기가 이야기한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 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서는 전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그냥 조용히 과거에 다녀온 느낌. 연료처럼 소진했던 작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소설 속 음악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소니롤린스의 sonnymoon for two 같은 음악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들을 수 있을까.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책장정리 | 2022. 5. 4. 17:40
Posted by seesun



정말 눈에 보이듯 잘 그려졌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문장에도, 글의 여백에도, 대화를 하다가 잠시 머뭇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의미를 담아내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내면을 세밀하고 깊이있게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건축학과 동창인 오카지마가 운영하는 직원 5명의 작은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아오세 미노루. 거품경제기의 영광을 뒤로하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45세 이혼남인 그는 시키는 대로 도면을 그리고, 그저 편리한 도구로 쓰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처럼 살아오던 그가 의뢰인에게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고, 무엇에 홀린 듯 최선을 다해, 남향이나 동향이 아닌 북향의 빛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아름다운 집을 지어냈다. 그 집은 일본 전국의 개성 있는 주택을 엄선하는 [헤이세이 주택 200선]에 Y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실리고, 다른 의뢰인에게서 그와 똑같은 주택을 지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그 의뢰인은 Y주택에 가봤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며, 집안을 한번 볼 수 있게 집주인에게 부탁해줄 수 없냐는 조심스러운 요청을 한다. 아오세는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오카지마와 함께 Y주택을 찾아갔지만, 그의 불안한 예상처럼 집은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느낌이었다. 

Y주택을 둘러보던 아오세는, 입주하지 않고 집을 방치해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걸까. 의뢰인 가족이 보였던 만족해하던 표정들을 기억하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집안에 있는 물건은 오직 창문 앞에 놓인 고상하고 소박한 나무 의자 하나 뿐. 

소설은 그 Y주택에 입주하지 않은 가족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이지만 내용은 '사람사는, 가족의, 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와 상대를 배려하는 작은 몸짓부터, 주인공의 속마음까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달에 한번씩 8년째 만나는 13살짜리 딸과의 많지 않은 대화 속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전부인 유카리와의 덤덤한 통화나 묘사된 행동들에서도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친구이자 회사 상사인 오카지마와의 이야기와 질투, 배려 같은 상황의 서술 또한 대단하다. 

어린 딸 히나코와 만나고 헤어지는 상황을 묘사한 글.
- 가게에서 나온 아오세는 온 길과 반대 방향인 아카사카미쓰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히나코가 사라진 길을 따라 걸으면 침울해지기 때문에 돌아갈 때는 늘 이 길을 택했다. 

이야기의 반전을 생각하게 하는 299p 
처음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던 것이다?

"겉보기에 좋은 게 곧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는데..."

 

또다른 반전을 의미하는 유카리의 말 408p 
아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짓고 싶은 집을 지으라고 할 걸...  '유카리' 8년 만에 이름을 불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알았다. 이렇게 정밀하고 내면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는지를...
이 소설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잡지에 연재했던 것을, 7년에 걸쳐 전면적으로 개고해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 문장 중에 남아 있는 것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한번에 읽거나 두세번에 나눠읽던 소설과는 달리 여러번 나눠 읽었다. 한 문장도 허투루 읽히지 않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내려가게 만든 책이다.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이기에 더 그렇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가 아닌, 가족을 이루고, 혹은 이루었었거나 이루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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